madame
트리샤는 탁자위에 올려둔 포장된 홍차를 가만히 응시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그것은 사실 찻잎이 아닌, 마담이 요청한 약이 담겨있었다. 굳이 투명한 팩에 담지 않고 홍차처럼 꾸민 것은 그녀 나름의 배려였다. 다른 사람의 눈을 신경 쓰지 않고 약을 복용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도 마담이 가진 특유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도록.
「 Pentobarbital Natrium - 2g 」
쪽지에 적힌 것을 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그것이 어디에 쓰일지 짐작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제안을 거절을 하지 않았던 것은, 그것이 비록 비정한 선택일지라도 그녀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었다. 또한, 먼저 제안한 것은 마담이었으므로 비단 그녀가 죄책감을 느낄 이유는 없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거절할 이유는 한가지다. 도덕적인 문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도덕. ‘살인과 자살은 나쁜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것을 바탕으로 누군가는 방관 죄를 덧씌우며 손가락질 할 것이고, 누군가는 그녀를 살인자로 몰 것이다. 하지만 빠져나갈 길은 많다. 혼자 꾸미는 것이 아닌, 당사자와 협의 된 사항이므로. 실행 범은 자신이 아니었으므로.
그리고 이 비밀스런 관계를 아는 것은 그녀와 마담. 단 둘 뿐이었다.
“오셨네요, 마담. 기다리고 있었어요.”
달그락.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맞은편에 검은 상복의 여자가 앉았다.
얼굴의 반을 검은 면사포로 가린, 차분한 분위기의 여성이었다.
“조금 이르게 도착한 모양이군요.”
“그렇죠, 마담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신사적인 말을 내뱉은 그녀는 가볍게 웃곤 제 앞에 있던 것을 마담의 앞에 밀어 건넸다.
“마담께서 부탁하셨던 수면에 좋은 「차」 입니다. 부디 마담의 불면증이 낫는 것에 도움이 된다면 좋겠어요.”
“…부탁한 시간보다 조금 늦었네요, 트리샤.”
“생각보다 구하기 어렵더군요. 쉽게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예요.”
그래도 늦지는 않았잖아요? 그녀는 평소와는 다르게 능글맞게 넘어가는 말을 뱉었다. 그리곤 시선을 돌리며 차분히, 자신의 앞에 내려두었던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스스로도 자신의 다른 분위기가 어색하단 눈치였다. 그에 마담은 그저 웃으며 건네진 것을 집어 들었다. 손 안에 들어갈 정도로 작고, 화려한 꽃이 그려 넣어진 이 포장지 안에 그것이 들었다. 마담, 자신이 부탁한 그것이.
“…예쁜 꽃이 그려져 있네, 무슨 꽃일까.”
순수한 의문이었다. 그저 눈에 띄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물음. 그것을 알았기에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커피만을 홀짝였다. 애초에 평소대로라면 용건만 간단히 하고 헤어졌을 것을, 아직 남아있는 차를 핑계로 자리를 뜨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도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외면하던 죄책감 때문일까. 아니면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낸 이의 마지막이 될 것이 분명한 순간을 담아두기 위해서일까. 그녀는 요즘 들어 유달리 불안정한 자신의 감정 상태에 질려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정에 휩쓸릴 이유는 없다. 휩쓸려서는 안 된다. 그것이 비록 알고 지내던 이의 마지막을 목도한 상황일지라도.
갑갑함을 이기지 못했던 그녀는 결국 무례함을 무릅쓰고 마담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찻잔은 이미 비워진 상태. 물건도 부탁한 이의 손에 들어갔으니 굳이 엉덩이를 붙이고 더 이상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낼 이유는 없는 것이다. 마담 또한 그녀와 아무 무게도 없는 빈 시간을 붙잡고 질질 끄는 것보단,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보내는 게 나을 터였다. 그것이 그녀의 배려였다.
“부탁하신 것은 건넸으니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고마워요.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기를 바라죠, 트리샤.”
“아마 그렇게 될 거예요, 이정도로 좋은 거래를 했는데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그건 바보나 다름없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돌아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 남은 마담도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