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며칠 째인지 모른다. 자신이 영국에 도착한 후부터, 또는 그 이전부터 내렸을 비는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었다. 결국 그 덕분에 눅눅한 옷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지 오래. 오늘도 상쾌한 외출은 불가능한 듯 보였다. 비를 핑계로 방에서 쉴까. 장마의 영향인지 며칠이 지나도 나른한 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때도 마찬가지. 나름의 친절을 베풀며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시험에 협조할 사람을 구하고, 어떠한 순간에도 이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가고 있음에도 기쁘지 않았다. 분명 목표는 완벽한 승리자가 되는 것임에도, 그것을 위해 이 자리에 존재하는 것임에도.

 

 방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면 역시 그에게 연락 해야겠지. 오늘은 기다리지 말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라고. 그런데 어떻게 전하지? 연락처를 받아뒀던가? 뚜렷하지 않은 기억을 더듬다가 피곤함이 심해지는 느낌에 반듯하게 앉아있던 자세를 풀어버렸다. 툭, 머리에 딱딱한 소파 등받이가 닿는다. 좋은 방으로 내세웠으면 인테리어에도 신경 쓸 것이지. 포근한 느낌일 거란 예상과는 달리 불편하기만 한 소파에 조금 기분이 언짢아졌다.

 

언짢아졌다? 아니, 기분은 이미 그 이전부터 좋지 않은 상태였다.

 

 팔걸이에 힘없이 올려져있는 손을 괜히 쳐다보았다. 길게 뻗은 손가락, 관절에는 나이테 같은 잔주름이 잡혀있고 길지 않은 손톱은 끝이 동그랗게 다듬어져 있었다. 예쁘지도 않고 못나지도 않은 평범한 손. 평범한 내 손. 평범했을 터인 내 손.

 

그래, 저 손이. 저 손이 그 손을 잡았어. 그리고 그의 키스를 받았지.

 

 

 

 

“‥Sorry, My dear.”

 

당신에게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일 수 있길 바라요.

 

 

+ Recent posts